거룩한 기다림에 임하신 영광 (이사야 9:1~2, 마태복음 4:12~17)

양정국 0 103

[성경본문] 이사야 9:1~2, 마태복음 4:12~17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마태복음 4:12~17]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거룩한 기다림에 임하신 영광


  대강절은 오신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의 주제는 거룩한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도 긴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세상에 오셨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인내와 믿음의 기다림이 있는 사람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공생애 초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8개월 사역하신 후에 갈릴리로 옮기셨는데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빛이 비칠 것이며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역사적으로 갈릴리는 북방 강대국이 침략을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짓밟힌 곳입니다. 그래서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었고, 유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대로 주전 732년 앗수르에게 사로잡혀 갔던 갈릴리 사람들이 돌아왔고, 동시에 이 예언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한 회복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또한 가버나움이란 지명은 위로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이에 진정한 위로와 평강의 주 예수께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갈릴리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많은 설교와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으며 오병이어 사건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이적과 기사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메시아이신 예수께서는 예언된 대로 다 이루시기 위해 가버나움과 고라신, 벳세다에서 이적과 기사와 영광을 그렇게 많이 보여주셨건만, 그들 가운데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호된 책망을 받습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그리고 가버나움아!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갈급함도 없었고, 기다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아무리 언약이 있는 가버나움이라 할지라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관계가 없게 되고, 오히려 더 큰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 탄생 즈음 예루살렘의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캄캄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시므온은 그럴수록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메시아이신 아기 예수를 만나 감사 감격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여 우리 가운데 영적 갈급함과 거룩한 기다림이 충만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