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9:26~27, 15:31)

양정국 0 46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9:26~27, 15:31

[고린도전서 9:26~27]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15:31]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9:26-27, 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성경에는 “죽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생물학적인 죽음보다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고전 15:22) 즉 지금 살아 있다고 산 것이 아니라 예수 생명이 있어야 산 사람입니다.(요일 5:12) 또한 죽음과 삶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죽어야 삽니다.” 더 정확하게 “살기 위해서 먼저 죽어야 합니다.”(막 8:35)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자기 부인은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으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성육신부터 십자가까지 지속적으로 자기를 부인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모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어도 내적인 갈등은 계속됩니다.(롬 7:21-24)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니기에 영적인 갈등과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목욕을 했더라도 손과 발은 수시로 씻어야 하듯 말입니다. 이에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 하면서, 주 안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런데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망하거나 패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하셨는데 이는 마지막 날에 있는 놀라운 은총인 동시에, 날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나는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큰 부활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작은 부활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의미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광야에서 내려 주신 만나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루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다는 뜻과 날마다 새 음식, 새 은혜를 베푸시므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시 4:7-8) 하루의 삶을 살면서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의 나를 주 안에서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새 날, 새 생명을 주셔서 또 하루를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하십니다. 오늘 새 밥을 먹기 위해서 어제 사용한 그릇들은 깨끗이 설거지를 해야 하듯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주 안에서 죽음으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